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으로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의 병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넘어, 사회적 고립과 절망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병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치유와 구원을 경험하며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 민족이나 사람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나아만과 같은 영적 이방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로마서 5:8)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로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계기는 그의 집에 있던 이스라엘 출신 여종의 선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종은 포로로 끌려와 억울한 상황에 처했지만, 원망하거나 복수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을 위해 선한 조언을 했습니다. 그녀는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소개하며 그가 나을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말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잠언 18장 21절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소녀의 말은 작고 평범해 보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을 때 나아만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말이 감사와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일을 처음에는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나와서 그에게 손을 흔들며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서 몸을 씻으라는 간단한 지시만 내렸습니다. 나아만은 이에 실망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는 요단강이 다메섹의 강들보다 더럽다고 생각하며 거절하려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기준과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나아만은 결국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집과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요단강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치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와도 같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단순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거룩한 은혜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평범한 곳에서 역사합니다. 요단강의 물은 그 자체로 치유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지만, 나아만의 순종과 하나님의 능력이 결합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며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나아만을 단번에 치유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과정을 통해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치유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한 기적의 수혜자로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일에 참여하는 인격적 관계를 맺도록 초대하십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그는 동안 자신의 교만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는 치유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치유를 받은 나아만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리려 했지만, 엘리사는 이를 거절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나아만은 이에 감동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헌신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알지 못했지만,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응답했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물질적 축복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와 "감사"를 뜻하는 유카리스티아는 같은 어근을 공유합니다. 이는 은혜와 감사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감사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카리스)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지만 조건 없이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은혜를 체험한 자는 자연스럽게 감사(유카리스티아)로 반응하게 됩니다. 나아만은 치유의 은혜를 받은 후 단순한 감사를 넘어 자신의 삶으로 그 은혜에 응답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생명, 일상, 가족, 구원의 선물—all of this is grace. 추수감사절은 이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 전체가 감사의 표현이 되도록 결단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말과 행동, 예배 속에서 드러날 때, 하나님은 그 감사 속에서 더욱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며 감사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갑시다. 은혜 없이는 감사가 없고, 감사는 은혜를 체험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아만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