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천국 복음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아는 방법은 오직 성경을 읽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과, 그의 천국의 의미, 천국의 실현을 위해 요구되는 것들, 그것을 위해 사도들이 무엇을 했는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 우리 교회는 성경을 잘 읽고 그대로 살기 위해 헌신하는 삶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확실하고 올바르게 알 수 있으며, 그 분이 우리에게 친히 들려주시는 사랑의 말씀을 듣고 참된 위로와 평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옛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하셨고, 그들은 그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것들이 모여 우리에게 성경책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구약에서는 예언자, 신약에서는 사도라고 불립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 선택받아서 그 분의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입니다. 세상에 많은 경전들과 고전 문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기록한 책은 달리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나 경험, 종교성으로는 알 수도 없고 체험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철학적으로, 영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결코 하나님께 이르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이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이 특이한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하고, 신기한 경험을 통해서 과거나 미래의 일들을 맞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신앙이 없어도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발 앞의 땅이 마치 구덩이처럼 보였습니다. 무서워서 어머니에게 배웠던 주기도문을 외면서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연적 능력을 통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 주실 떄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사건을 우리는 계시라고 부릅니다. Revelation 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계시하시는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계시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그 계시를 받은 사람이 많아도 몇십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계시를 받는 것은 인격이나 능력이 탁월하거나, 특별히 양심적이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사람만이 받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 계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또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말씀이라는 형태로 주어졌다는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And God said 라는 말씀은 사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언가 보여주신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 인간은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뭔가를 보아야 만족하고, 맛도 보고 뭔가도 해 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와 하늘의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면 우리는 훨씬 실감나게 잘 믿을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상을 보여 주신 적도 여럿 있습니다. 모세, 엘리사, 에스겔, 다니엘 등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이나 이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Seer, 선견자라 불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훨씬 많은 것은 prophet, 선지자 또는 예언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떄로 우리의 다른 감각들도 사용하셔서 자신을 알리십니다. 가끔씩 그 분의 터치를 받는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맛을 느낀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씀을 먹었더니 입에 달았더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냄새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냄새로 자신을 알리신 경우가 있을까요? 구약에서 번제를 비롯한 제사를 드릴 때는 냄새가 아주 강렬했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냄새를 맡으며, 하나님께 나 대신 바쳐진 희생 제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각, 듣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은 들으라 이스라엘! 이라고 하십니다. 보라! 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만큼 보여주지 않으셨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때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보았고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그들의 믿음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성경에는 보는 것이 우리를 올바른 판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 보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들려 주셨는데, 그것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형제들을 보았을 때, 외모로 보기에는 다른 형들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셨습니다. 시각적 경험은 매우 강하고 다른 감각을 압도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자연적, 인간적 감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선악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과 비교하면 좋겠습니다.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침공해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은 10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군이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이 성에서 나와 보니까 집채만한 목마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논쟁이 벌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목마가 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이기 때문에 성 안으로 잘 들여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오콘이라는 예언자가 나와서 외칩니다. 이 목마를 성 안에 들이면 큰일납니다. 우리는 즉시 이 목마를 불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다에서 괴물이 나타나서 라오콘 예언자를 낚아채서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모두가 경악을 했지요. 이것은 분명히 신들이, 아마도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보낸 신적인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라오콘의 말이 맞았다. 그 말대로 목마를 불태워야 하는데 그것을 원치 않는 어떤 신이 그의 입을 막으려고 괴물을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사실 맞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정반대의 해석을 합니다. 라오콘의 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목마는 신들께 바쳐진 제물인데 라오콘이 감히 불태워야 한다고 해서, 신들이 노해서 괴물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토론을 하다가 결국 목마를 성 안으로 들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대로 그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나와서 트로이 성을 멸망시킵니다. 이 이야기는, 만약에 신적인 메시지, 신탁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주어졌을 때 문제를 말해 줍니다. 그 본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성경에서도, 아모스나, 스가랴, 다니엘 같은 분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이상을 보았지만 해석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나 천사가 해석해 줄 때에만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실 때에는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말씀으로 들려 주셔서 그의 백성들이 의미를 확실히 알도록 해 주셨습니다.
계시록 1:3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되어 있는데 읽는 자는 단수, 듣고 지키는 자는 복수형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성경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모이면 한 사람이 성경을 큰 목소리로 읽습니다. 그러면 온 성도들은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책은, 구약과 신약 모두, 본래 소리내어 읽도록 쓰여진 책입니다. 4-5세기의 위대한 교부 성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성 암브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어느 날 보니 암브로스가 성경을 소리 없이 묵독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야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참 대단한 분이다 라고 감탄했습니다. 그것처럼 옛 성도들은 원래 성경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오늘 우리는 모두가 성경을 갖고 있기에 속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을 보면, 이 문장을 읽을 때 어디를 길게 읽고, 어디에서 끊고 어디에서 올리고 내린다는 표시가 작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 악센트인데, 악세트는 원래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읽으면 노래하는 것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수 있는데, 문장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알아야 어디서 끊을 지 알고 정확히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묵상한다는 단어는 새 번역에서는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중얼중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말씀을 중얼거리다가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주야로 중얼거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씀을 늘 중얼중얼 해야 합니다.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 말씀을 밤낮으로 중얼거리는 사람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맨 처음인 1편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진리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즐겨 읽고, 중얼거리면서, 무엇보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